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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리핀 국민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
    한국인의 필리핀 이주 역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용된 경우와 정신대로 오게 된 경우 등 암흑시대의 희생자로 첫 발을 디딘 이후 한국의 6.25 전쟁 시 필리핀군이 우리나라를 도와 군대를 파병하게 되었고, 60~70년대에는 필리핀에서 우리나라에 경제 원조를 함으로써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다. 한인회는 1969년도에 설립되었으며, 70년대 이후로는 한국 대기업이 지상사를 파견하기 시작했고, 선교사, 유학생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필리핀 한인총연합회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한인들의 친목과 유대를 강화하고 그 복리를 증진하며, 아울러 필리핀 국민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함으로써 한인들의 위상을 제고하고 조국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경남고성은 이원주 회장의 고향이다. 이순신 장군이 승전보를 올린 당항포가 지척이다. 면서기였던 아버지와 농사짓던 어머니 사이에서 5남2녀의 넷째로 태어났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의 그는 속않이를 자주하여 위장에 뭐가 들었는지 직접 보고 싶어 의사가 되려고 했다. 고성종합고교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어 의대 진학은 포기를 하고, 부산에 있는 무역회사 조광무역에 취직을 했다. 1980년 조광무역 해외법인 직원선발에 지원 했던 것이 필리핀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이 원주는 마닐라 인근에 있는 종업원 2천명을 거느린 ‘ 케이리 패션 ’의 대표이다. ‘ 코리아 ’의 ‘ 케이 ’와 ‘이원주’의 ‘리’를 합성해 회사명을 지었다. 여성의류를 만들어 바나나 리퍼블릭, 폴로 등 미국 브랜드에 전량 납품하는 이 회장은 성공한 한인 기업인이다. 그는 지난해 12만 필리핀 교민을 대표하는 한인 회장이 됐다. “ 그 사람이 감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한인회 분열을 막기 위해 떠밀려 회장이 됐다.”고 한인 기업인 김영기 씨는 전했다.처음 필리핀에 간다고 했을 때 당시만 해도 20대에 해외 가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버지는 무한한 경험을 해보라고 했으나, 어머니가 “결혼이나 하라”고 반대했다. 젊은 나이에 외국에 도전한다는 게 그는 큰 꿈과 희망이었다. 지금 당사에 근속 20년 이상 현지인이 13명이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현지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면 성공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당시 필리핀 직원들의 영어소통 능력, 임금, 기술 등이 의류사업 하기에는 조건이 좋았다. 미국에 전량 납품하다 보니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4천만 달러 넘는 매출이 재작년 280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작년에 조금 회복했고, 조금 있으면 4천만 달러 아니라, 5천만 달러도 할 수 있다고 본다. 1982년 조광무역 필리핀 근무 마치고 귀국해서 부산에서 아내를 만났다. 처음 만난 날 점퍼차림으로 가서 필리핀 이야기만 늘어놓았는데 이게 집사람 마음을 끌었나 보더라. 잔업이 많아 데이트 약속시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지만, 아내는 늦더라도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믿고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83년 결혼 직후 그는 혼자 다시 필리핀에 왔다. 조광무역을 퇴사하고 미국계 회사에서 3년간 일했고, 그 돈을 밑천 삼아 1987년 회사를 창업했다. 아내와 자녀들은 1985년 마닐라로 왔다.해외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그 나라를 공부해야 한다. 그 나라 문화와 언어,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 가서 한국 스타일, 한국 음식만 고집하려면 그냥 눌러 사는 게 나을 것이다. 최근 지식경제부장관상을 수상한 이원주(57) 케이 리 패션 대표는 자신의 회사를 필리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의류 생산업체를 키운 비결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 신뢰를 최우선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 사업을 하면서 거짓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거짓말과 변명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할 수는 있어도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낳기에 결국 발목을 잡는다”고 비즈니스 철학을 밝혔다. 그는 2003년부터 사단법인 JTS코리아(이사장 법륜스님) 필리핀지부 대표로서 10여 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민다나오 오지에 40여 개 학교 설립을 지원해 왔으며, 올해 1월부터는 필리핀 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필리핀 동포 10만 명을 대표하고 있다. 나이도 생일도 모르는 민다나오 원주민들. 물건 팔고도 셈을 못하니 장사꾼들에게 번번이 속아서 생활터전을 잃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 가톨릭, 이슬람, 원주민 지역을 돌아가며 학교를 지어주었다. 자그마한 체격의 이원주. 그로나 그로인해 수많은 민다나오 원주민들의 삶은 휠씬 성장했다. 이원주는 “내가 그들보다 조금나은 위치에 있으니 도울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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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11-14
  • 한복의글로벌노력 고대복식장점살린 우리 옷 연구가 ‘웅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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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8-29
  • 환경과학원장, 과학기술연구기관협의회장 선임
    국립환경과학원(원장 박석순)은 박석순 국립환경과학원장이 지난 6일 국립과학기술연구기관협의회(이하 과기연협의회) 초대 회장으로 선임됐다고 13일 밝혔다. 과기연협의회장은 2년의 임기동안 과학기술 유관기관과 업무협력을 총괄한다. 과기연협의회는 과학기술 분야의 국립연구원이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공동연구, 인적교류, 연구 표준화, 현안과제 공동대응 등을 창립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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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7-12
  • 보쉬 헤르만 캐스 사장, 대학생 리더십 강연 활동 개진
    글로벌 선도 기업인 보쉬가 국내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리더십 강연 활동에 나선다고 밝혔다. 오늘 성균관 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의 강연을 시작으로 향후 지속적인 순회 강연을 해 나간다는 것이 보쉬의 설명. 오늘 성균관 대학교에는 보쉬 코리아 헤르만 캐스 사장이 강연에 나서 “기술 개척자에서 성공적인 글로벌 선도 기업이 될 수 있었던 보쉬의 리더십(From Technology Pioneer to Successful Global Player by Unique LEADERSHIP“을 주제로 학생들과의 소통의 장을 펼쳤다. 강연을 통해 캐스 사장은 지난 125년을 넘어 작은 창업자의 정신에서 오늘의 글로벌 리더 기업이 된 보쉬의 히스토리를 비롯해 창립자 로버트 보쉬의 비젼, 가치, 철학, 특별한 리더쉽을 설명했다. 특히 아직까지 보쉬의 기업 철학 원칙으로 남아 있는 창립자 로버트 보쉬의 경영 철학의 혁신 정신을 강조하며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한 혁신의 마인드를 강조하며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한편 보쉬는 “생활 속 기술(Invented for Life)“라는 슬로건 아래 자동차 부품 및 부품 애프터마켓, 산업 자동차 제품, 전동공구 및 액세서리는 물론, 보안 기술, 센서 등을 공급하며 인류의 삶을 윤택하게 하기 위한 기술과 서비스의 공급에 주력하고 있으며, 지난 창립 125주년을 맞이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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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03-30
  • 통영을 물들이는 색채의 향연
    경상남도 통영. 아름다운 다도해의 아름다운 풍광이 두 눈 가득 놀라움과 편안함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곳. 걸출한 예술가들의 도시이기도 한 통영은 도시 곳곳 그들의 흔적과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통영시 봉평동에 위치한 전혁림미술관(관장 전영근, www.jeonhyucklim.org)은 지난 2003년에 건립돼 한국적 모더니즘의 선구자 ‘전혁림 화백’의 예술세계를 알리고, 지역민에게 쉽게 예술을 접할 수 있는 장으로써 지역의 대표적 문화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서양 미술가, 색채의 마술사 故 전혁림 화백전혁림 화백은 1915년 통영시 무전동에서 태어나 1938년 부산미술전에 입선하면서 미술에 입문했다. 민족정서에 기인한 한국미의 총체적형상화를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한국적 모더니즘의 선구자’로 평가 받았으며 만년에는 고향에 머물며 오방색을 사용한 한국적 색채의 추상화를 그려 ‘색채의 마술사’라는 평을 얻었다. 영남지역 비구상회화의 근원으로서 지역 미술계는 물론 한국 미술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 화백은 1953년 제2회 대한민국 미술대전(국전)의 문교부수석장관상, 1996년 대한민국보관문화훈장 수상했으며 경남미술대전 대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반추상적 표현을 구사하여 민화에 등장하는 한국의 전통적 기물이나 두루미, 항구의 풍경등을 그린 초기, 추상적 풍경과 함께 도자기, 목조각 등 다양한 실험을 통한 탐구적인 작품과 한국의 전통 색채인 오방색을 사용했던 중기, 민화적 미감과 원색의 강렬한 대비를 이용해 우리 고유의 민족 정서를 재해석한 후기 작품에 이르기까지 3,000여 점에 이르는 실험적이고 유려한 작품을 남겼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전혁림 초대전’, ‘통영시 초대 전혁림 특별전’, ‘경남도립미술관 전혁림 특별전’, ‘대전시립미술관 전혁림초대전’ 등 다양한 전시회를 통해 대중과 소통하였고 국내 유수 미술관 및 공공기관에도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이영 미술관 소장품인 ‘천개의 경이로운 새만다라’, 청와대영빈관의 ‘한려수도’, 부산시청의 대형 벽화가 그의 작품이며 2005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전시회를 관람하고 ‘통영항’ 그림을 사들여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는 지난 2010년 5월25일 향연96세의 노환으로 작고하기까지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왕성한 작품 활동에 매진했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에 추서되기도 했다. 어려운 환경, 추상화라는 장르적 한계 넘는 다양한 작품 활동 1938년 부산 미술전에 ‘월광’과 ‘누드’를 출품하면서 화단에 입문한 전 화백은 1948년과 50년 사이 극작가 유치진, 음악가 윤이상, 시인 김춘수 등과 더불어 통영 문화협회를 창립하였다. 문예 활동을 통해 해방된 조국의 민족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민족활동을 이어 왔던 그는 연이은 국전 수상과 문교부 수석 장관상으로 많은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러나 당시 대중들이 이해하기 어려웠던 추상화를 주요 작품으로 내어놓았기 때문에 늘 현실적 어려움에 직면 할 수 밖에 없었다. 한때는 교편을 잡으며 생활고를 극복하기도 했었고, 잠시 화단을 떠나 세상을 등지기도 했다. 그러던 그가 다시 고향을 찾은 것은 1977년. 당시 발행되던 유일한 미술지인 계간미술에서 12명의 미술평론가들에게 의뢰하여 역량에 비해 저평가 받는 작가를 선정하게 했다. 그 때 선정된 세 명이 바로 전 화백을 비롯해 호남의 오지호 화백과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선생이었다. 전 화백은 다시 한번 국내외의 주목을 받으며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으며 고령에도 불구하고 왕성한 작품 활동을 벌여 후학들에게 귀한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또한 통영에 전혁림 미술관을 개관, 통영의 대표 작가로서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작품을 통해 소통했다. 전혁림 화백 1주기 기리는 화비 세워져지난 5월 24일에 통영시 봉평동 주민자치위원회와 미술협회 통영지부는 전 화백이 작업 도중 쉼터로 자주 찾았던 봉평동의 당산나무 아래에 화비를 세우고 기념식을 가졌다. 화비는 조각가 이명림씨가 전 화백의 1984년 목제조각 작품인 '학기둥'을 확대한 것으로 화강석 재질의 높이 2m, 너비 50cm 규모이다. 전혁림미술관에서는 고인의 생전 인물사진과 데드마스크, 각종 기록물, 유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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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26
  • 건국대 초빙 노벨상 석학교수 루이스 이그나로
    건국대 초빙 노벨상 수상 석학교수인 루이스 이그나로 교수(1998년 노벨생리의학상)가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WCU) 육성사업에 참여하는 국내외 석학들의 지식교류의 장인 ‘2011 WCU 국제 컨퍼런스’에서 기조강연을 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주최하고 한국연구재단, WCU협의회가 공동주관해 4일 서울 그랜드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열린 ‘2011년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WCU:World Class University) 국제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자로 참석한 건국대 석학교수(University Professor)인 루이스 이그나로(Louis J. Ignarro) 미 UCLA 교수는 “세계수준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이 한국 대학들의 경쟁력 강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그나로 석학교수는 “대학에서 진행하는 기초 연구는 수익성을 좇는 기업 활동과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교수들의 기초연구에 대한 자금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행사는 2008년에 시작된 WCU 육성사업의 성과를 공유하고 WCU 육성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국내외 석학들의 지식을 교류하기 위해 마련됐다. △WCU 우수성과 전시 △노벨상 수상자의 기조연설 △국내외 석학들의 패널토론 △학문분야별 전문 세션 △주니어 세션 등으로 진행됐다. 국내외 석학 패널토론에서는 ‘캠퍼스 국제화’를 주제로 국내외 석학들의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졌다. 그간 추진된 국내 대학의 국제화 현주소와 문제점을 진단하고, 캠퍼스 국제화의 올바른 추진 방향과 실효성 확보 방안 등이 논의됐다. 루이스 이그나로 석학교수는 ‘노벨상 수상자와의 만남’이라는 주제의 주니어 세션에서 150여명의 중·고등학생들과 만나 과학자로서의 삶과 노벨상 수상과 관련된 에피소드 등 다양한 내용에 관해 질의응답을 하며 학생들에게 노벨상 수상의 꿈을 키워줬다. 이 가운데 학생 5명은 영어로 주제발표를 하고 노벨상 수상자로부터 논평을 받았다. 과학자가 되려는 어린 학생들의 의지를 칭찬한 그는 “한국 기초연구에 대해 지속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앞으로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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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25
  • 한국발명진흥회 신임회장에 김광림 의원 취임
    한국발명진흥회는 오는 20일 신임회장으로 김광림 의원(63)이 취임한다고 밝혔다. 김 신임회장은 경북 안동 출신으로 행정고시 합격(14회) 후 기획 예산처 재정기획국장, 대통령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특허청장, 재정경제부 차관, 영남대 석좌교수, 세명대 총장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 제18대 국회의원(한나라당, 경북 안동)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김 신임회장은 “우리나라 발명·특허 등 지식재산권 분야의 중추기관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발명진흥회의 회장직을 맡아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지재권의 양적인 성장을 질적인 경쟁력으로 승화시켜 우리나라가 특허강국으로 확실히 도약할 수 있도록 발명의 토대를 마련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취임소감을 밝혔다. 김 신임회장은 20일 서울 노보텔 앰배서더 강남에서 개최될 한국발명진흥회 이사회에서 제16대 신임회장으로 선임된다. 임기는 3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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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19
  • 완전한 채식, 건강을 부르는 최고의 비법!
    “모든 병은 다 나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병의 원인은 생각하고 먹고 마시고 행동하는 것에서 오기 마련이다. 그 중 먹는 것은 마음까지 지배하는 중요한 일이다. 제가 채식을 실천하고 있는 이유도 같은 것이다. 의사가 하는 일은 이미 생긴 병과 상처를 치료하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이 바뀌지 않는 한 건강은 다시 반복적으로 나빠지게 된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채식을 통해 건강한 삶을 누리게 하는 것 또한 의사로서 제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다.” 울산 새아침연합내과 정인권 원장은 우유·계란·유제품조차도 먹지 않는 비건(vegan) 즉 완전채식을 실천하는 의사다. 그가 운영하는 내과의원 안에도 채식의 이로움과 육식의 해로움을 알리는 홍보물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부착해 환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채식 전도사로 통하는 그는 채식을 실천하는 의사·치과의사·한의사들의 모임인 베지닥터(www.vegedoctor.com)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건강한 위를 만드는 식습관, 채식이 답이다.새아침연합내과 정인권 원장이 처음 채식을 시작한 것은 10년 전, ‘간디 따라하기’라는 간디의 자서전을 읽고 난 후였다. 이후 5년이 지나고서는 생선이나 우유, 계란 등도 먹지 않는 완전한 비건 채식을 실천하며 하루 두 끼의 식사를 한다. 점심을 먹지 않는 대신 정 원장은 명상의 시간을 갖는다. “채식을 시작하면서 하루 두 끼를 고수해 온 것이 14년째이다. 점심시간에 명상을 하면 오후가 한결 가볍고 거뜬하다.”라고 전했다.하루 2시간 명상하기, 하루 2시간 걷기, 2시간의 식사시간, 고기 먹지 않기, 가능한 걷기, 음식 남기지 않기(빈그릇 운동)등은 그의 건강을 지켜주는 오랜 습관이다. “위는 신경의 적용을 많이 받은 장기이다. 생각이 복잡하면 위에 가야 할 피가 뇌 쪽으로 몰려 제대로 소화를 시키기 어렵다. 또한 음식을 빨리 먹으면 빨리 배가 고파지고 자주 먹게 되는 데, 이는 위장의 리듬을 깨뜨려 건강을 해치는 주요 원인이 된다. 특히 밤에는 몸의 유해 성분이 없어지고 회복하는 시간이기 때문에 위장을 쉬게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오래 씹고 먹는 것은 혈액 순환과 위액 분비에 좋아 위를 건강하게 해준다. 특히 고기, 생선, 우유, 젓갈, 김치 등의 음식은 안 먹는 것이 건강에 좋다. 동물성 단백질의 효능은 대부분 포장되거나 부풀려져 대중들이 크게 혼란을 겪고 있지만 완전한 채식은 몸 전체의 건강을 지켜주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다.”정 원장은 “우유는 액체로 된 고기로 보면 된다. 건강으로 봐서는 친구가 아닌 적인 셈. 여러 가지 이해관계가 얽혀 그 실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일 뿐 우유가 일으키는 질병 또한 굉장히 많다.”고 주장했다. 그는 보다 많은 의사들이 채식을 알리는 데 동참하기를 원한다. “채식은 환경을 보호하고 식량 부족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전쟁 및 다툼, 동물 학대 등 내부의 폭력성을 다스리는 좋은 해결책이 된다. 후손들에게 보다 더 좋은 환경을 물려주기 위해서라도 채식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간은 단체 의식 속에 살며 그 의식 역시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는 만큼 언젠가는 채식에 대한 의식 역시 올바르게 바뀔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명한 목적 의식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현“의사의 가장 큰 역할은 환자가 건강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그가 처음 병원을 개원한 것은 지난 92년. 지난 2006년에는 ‘새아침연합내과’로 이름을 바꾸며 병원을 새롭게 단장했다. 심장내과 교수 출신이지만 위, 장, 갑상선, 고혈압, 당뇨 등 그가 다루는 범위는 광범위하다. 내과는 다른 과에 비해 모든 문제가 연결되어 나타나는 병이 많기 때문에 부분보다는 전체를 보는 실력이 필요했던 것. 최근 큰 이슈가 되고 있는 갑상선 검사부터 크고 작은 내과적 문제들을 유기적으로 진단하여 보다 효과적인 치료를 하고 있다.한편, 정 원장은 바쁜 와중에도 주위를 향한 따뜻한 도움도 잊지 않고 있다. 지난 1991년, 아이들이 잘 자랐으면 하는 소망으로 시작한 후원이 올해로 벌써 20년을 맞고 있다. 매월 전달되는 50만원의 후원금은 울산지역 빈곤아동 10명에게 경제적 지원비로 지급되고 있다. 지난 5월 18일에는 이에 대한 감사의 의미로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으로부터 나눔 현판을 전달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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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10-17
  • 바닷길과 함께하는 통영지킴이
    지방자치는 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정치’를 펼칠 수 있는 최적의 정치 무대다. 정치를 위한 정치가 아닌 지역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지역 대표를 찾는 것은 지역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통영출신인 김윤근 경상남도의회 의원은 지방 자치에 적합한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여러 개의 섬으로 나뉘어진 지역구를 직접 배를 타고 들어가 주민들의 소리를 듣고, 주민들을 위한 일에 소신 발언을 아끼지 않는다. 가장 필요한 곳에 예산이 쓰여 질 수 있도록 의안을 발의하고 올바르게 예·결산이 되었는지 감시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누구보다 주민과 가까운 곳에서 일하는 그의 하루는 누구보다 빠르게 흘러간다. 주민들의 바람, 배를 타고 나서는 지역구 의원벌써 3선 도의원으로서 임기를 지내고 있는 김윤근 의원. 그의 유별난 지역구 사랑은 주변에서도 유명하다. 통영에서도 변두리 지역으로 속하는 통영시 제1선거구 지역을 위해 농로와 하천, 마을 진입로 등을 정비하고 재난에 대비해 위험지역을 수시로 돌아보며 점검하는 등 살뜰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노령 인구가 많은 점을 고려, 마을 회관을 신축하고 리모델링하여 주민들이 보다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의정 활동을 하는 회기 때에는 각 지역 숙원사업 해결을 위해 관련 부처와 협의하고 예산안을 심사하는 등 의정 활동에 매진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지만 다소 여유가 있는 비회기 때에는 꼭 지역을 방문한다. 도서지역의 경우 배를 타고 방문해야 하지만 주민들의 실질적인 어려움을 듣기 위해 바닷길도 마다하지 않는다. 더욱이 섬 지역의 경우 경제·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이 많아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 “배를 타고 섬으로 나가 시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때, 그 분들의 순수한 마음이 마음 깊이 느껴질 때, 그분들의 넉넉한 마음만으로도 가슴 가득 채워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직접 그 분들을 만나며 세심하게 그들의 바람을 듣는 것이야말로 지역 의원이 지켜야할 본연의 임무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쁜 의정 활동이지만 대표 의원으로서 소홀함이 없게 해야겠지요.” 도서지역에 대한 그의 관심은 실질적인 의정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김 의원은 영세 도선사 지원 조례를 발의하여 버스 회사의 적자 노선과 같이 섬을 왕래하는 영세 도선사에 대해 지원을 해줌으로써 해당 도선사는 물론 섬 주민들에게도 운항 간격 단축이나 서비스 향상 등 직·간접적인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 또한 관광 산업 발전은 물론 주민 생활 편의와 소득 증대에 기여하게 될 사량도의 상도와 하도를 연결하는 연도교 준공에도 3억 9천만원의 도비를 확보,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화재에 무방비한 도서 지역에 화재 발생 시 긴급 출동할 수 있는 살수차와 화재진압용 모터펌프를 보급하는 데도 힘을 기울였다. 이외에도 김 의원은 가고 싶은 섬 개발사업, 연기~해간 연륙교 가설사업, 도서종합개발사업, 도서지역 식수원 개발 등 도서지역의 실질적인 불편을 해소할 수 있는 거시적인 방안을 마련, 도서지역 산업 및 생활 개선에 힘쓰고 있다. 김 의원, ‘통영은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잠재력의 도시’ 아름다운 다도해와 청정해역이 펼쳐진 통영은 어업은 물론 관광, 조선업 등 다양한 산업이 분포하는 도시다. 김 의원은 일찍이 수산업에 관심을 갖고 어업 발전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남해의 청정 바다에서 나오는 통영의 수산물은 전국 최고 수준. 그는 양식 산업의 품종 고급화와 경쟁력 확보, 어업인 소득증대 기반 조성을 위해 2009년 전국 최초로 ‘양식어장 공영제를 발의’하기도 했다. 또한 굴패각처리비, 붕장어 경쟁력 향상자금지원, 자율관리어업육성 등 실질적인 어업 육성에 앞장서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개최된 통영 수산업 발전방안 간담회에서는“어려운 환경에서 묵묵히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어업인들을 위하여 수산업 발전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고, 수산업이 도약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어업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통영 수산업 발전을 위한 결의를 다지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아울러 도의원으로서 예산안확보에도 주력, 통영시의 많은 현안사업들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도비 확보에 힘을 기울여 정치의 고향이자 삶의 바탕인 통영을 위해 통영국제음악당, 통제영복원사업, 사량도 연도교 사업, 이순신광장 조성사업, 산양스포츠파크 조성사업 등 지난 2007년부터 3년간 매년 300~400억원의 도비를 지원 받는 성과도 이루어 냈다. 거침없는 소신발언, 진취적인 의정 활동으로 주목 지난 2002년부터 경남도의원을 지내고 있는 김 의원은 주민들을 위한 소신 발언을 굽히지 않는다. 지난 2009년 경남도의회 5분 발언을 통해 해수부의 폐지가 부당하다며 역설하였으며 해수부 존치를 위해 많은 힘을 기울였다. 또한 전국 최초로 지역신문 발전조례안을 발의하여 지방자치에 있어 지방 언론의 중요성을 강조, 시민들의 알권리와 여론의 다양성 확보를 추구했다. 지난 2009년에는 통영↔거제 간 시외버스 무전동 경유 횟수를 늘리기 위해 주민들과 힘을 합쳐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뛰어난 의정 능력으로 대내외의 주목을 받아온 김 의원은 ‘2009년도 대한민국 장한 한국인상’ 정치·행정 부분을 수상하기도 했다. 도의회 3선 의원으로서 경남도의회 운영위, 경남지역연안 관리심의회 위원, 도의회 농수산위원회, 건설소방위원회 위원장, 안전관리위원회, 선진교육문화 연구회, 선진경남정책 연구회 등 다양한 실무 경험을 갖춘 인재로서 당 내에서도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김 의원은 경상남도의회 한나라당 대표의원으로 추대되었으며, 현재 한나라당 경남도당 부위원장, 상임전국 위원회 위원을 맡고 있다. 생활 스포츠의 저변확대와 스포츠 통한 화합 꿈꿔 그의 또 하나의 직함은 통영시생활체육회 회장이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중장기 사업의 일환인 ‘스포츠클럽’ 사업을 통영시에서 이끌게 되면서 그가 맡은 책임도 그만큼 무거워졌다. “스포츠 사업은 체육이라는 연결 고리를 통해 사회 각계각층은 물론 소외된 이웃들을 보듬을 수 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이는 사회 문제 해결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 스포츠클럽 사업을 통해 우수 선수를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 큰 도움을 받게 되면서 학교를 비롯해 엘리트 체육 및 생활 체육이 활성화 될 것을 기대해 봅니다. 통영생체회 역시 스포츠 저변 확대와 국민들의 참여율 증진, 가족 중심의 클럽 운영을 통한 가정 문제 해결 등 다양한 과제를 앞두고 있습니다.” 생활체육회는 88서울 올림픽 이후 높아진 일반 국민들의 체육활동 참여 열기를 바탕으로 국민 건강 및 여가 선용에 대한 관심이 부각되며 만들어진 생활체육 추진 전담기구. 종목별 연합회를 관리 지원하고 각종 생활 체육대회 개최와 참가, 생활체육교실 및 프로그램 운영 등 지역 생활 체육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통영시생활체육회는 올해 제14회 영·호남생활체육대회, 제6회 경상남도어르신생활체육대회 등에 참가하고 제10회 통영시생활체육대회를 개최하여 생활체육 저변확대와 지역사회 생활체육 활성화의 장을 마련했다. 또한 ‘생활체육인의 밤 및 통영시 자랑스런 생활체육인상 시상식’을 개최하여 시상을 통해 지역 생활 체육 지도자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04년 제5대 회장으로 취임하였으며 뛰어난 리더쉽을 인정받아 2008년 제6대 회장으로 연임되었다. 지역사회의 생활체육진흥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으며 지난 2009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선정한 ‘2009 국민생활체육 유공자’로 지정되기도 했다. 통영시생활체육회는 지난 6월 11일과 12일에 ‘제5회 한산대첩기 국민생활체육 전국 남·여 배구대회’를 열었다. 총 150팀, 3천여 명의 인원이 함께하는 자리를 통해, 생활 체육 증진은 물론 방문객들에게 해양 관광도시 통영의 모습을 소개하고 지역 경제가 활성화 될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통영시생활체육회는 올해 시민생활체육 참여율을 50%로 높이는 것을 목표로 생활체육교실, 진흥시책 사업 운영 및 프로그램 개발 보급, 일반 및 어르신 전담 생활체육지도자 운영 등 각종 사업을 진행하며 대한민국 최고의 생활 체육 진흥 기관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생활 체육 종목의 다양화와 저변 확대로 많은 동호인이 확충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라 평하며 “조직의 근원인 클럽과 연합회 규칙에 순응하여 생활 체육의 목적인 생활 체육 참여로 심신의 건강 증진과 삶의 질 향상으로 민주 시민의 자질을 갖추는 성숙된 생활 체육인으로 정착되길 바란다.”고 애정 어린 당부를 잊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김 의원은 “다가오는 남해안시대 최중심에는 천혜의 도시, 통영시가 자리할 것으로 확신한다”며 “시민 모두의 힘을 모아 신 해양 르네상스를 함께 만들어가자”는 말로 인터뷰를 마쳤다.
    • 오피니언
    2011-10-03
  • ‘한국의 386세대여 생각을 바꿔라!’
    저자 하태경은 80년대 한국 학생운동의 주역 중 한사람이었다. 전대협 조국통일위원회에서 활동하며 2차례 투옥되기도 했던 열혈 투사였다. 그러나 하태경은 문익환 목사의 죽음으로 큰 생각의 변화를 겪는다. 북한에서 ‘문익환은 안기부의 프락치’ 라는 팩스 한 장이 내려오자 함께 통일운동을 했던 사람들조차 문익환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매도했던 것이다. 하태경은 북한-중국 접경지대에서 직접 탈북자를 만나 북한의 현실을 확인한다. 그리고 북한 민주화운동이라는 새로운 운동을 시작한다. 총보다 메시지가 더 중요하다는 신념을 갖고 미국의회를 설득해 열린북한방송을 설립하기도 한다. 이 책은 어쩌면 오래된 반성문일 수도 있다. 저자의 신념이 어떻게 바뀌어 나갔는지? 그 변화의 과정을 조밀하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책이 더욱 강조하는 것은 어느덧 기성세대의 위치에 앉아 현재 우리 시대를 이끌고 있는 386세대의 프레임 전환이다. 386세대는 아직까지 과거의 반미-친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같은 인권문제인데 북한인권은 외면하고, 같은 민주주의인데 북한의 민주화에는 입을 다물고 있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며 같은 시대를 살았던 옛 동지들에게 생각의 전환을 촉구한다. 민주주의는 국경이 없기 때문이다.
    • 오피니언
    2011-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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