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03(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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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우리의 삶 속에 항상 녹아 들어가 있다. 개인의 일생에서 음악이 없었을 때가 있었던가? 태어날 때부터 지금껏 아니,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음악을 듣고 부르면서 살아간다.

 

또한 음악은 시대를 대변한다. 세상의 어떤 변화에도 민감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과거 운동권 시대, 금지된 노래들도 민중들의 마음을 대변했으며, 사회 부조리를 비꼬우며 현 시대의 실태를 풍자하기도 하였고 때로는 대중들을 선동하는데 음악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일생을 바꾸기도 하고 한 사회는 물론 크게는 시대의 흐름과 정신을 담아내는 것이 바로 음악이다.

 

40대 중반을 지난 지금의 나이에도 가끔 90년대의 음악을 듣고 있다 보면 추억과 함께 그 시대의 향수가 전해진다. 이번 『마이뮤직 프로젝트』는 현재의 나의 모습과 정체성에 영향을 끼친 음악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이다.

 

지금은 만나볼 수 없지만 나의 인생에서 학창시절, 직장, 한 가정의 가장이 되기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신해철’이라는 뮤지션과 그가 세상 앞에 처음 등장한 ‘그대에게’라는 노래는 나에게 어떤 영향을 줬을까 고민해보는 시간이 될 것 같다. 아울러, 그의 음악이 당시의 시대정신을 어떻게 대변하였는지 알아본다.

 

나의 어린 시절은 연예인 혹은 가수라는 직업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아니, 지방출신인 나는 더더욱 없었다. 흔희 대중음악을 듣기에는 TV 말고는 별다른꺼리가 없던 당시, 중학생인 누나와 같이 살던 20대 이모들로부터 그 시대의 음악을 접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대학가요제가 TV에 할 때면 항상 우리 멤버들은 누가 대상을 탈지 지켜보곤 했다. 신해철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된 건 아마 그때였을 것이다. 대상 곡은 바로 그의 데뷔곡 ‘그대에게’이다. 당시에는 흔한 노래가 아니었다. 음악이 뭐랄까? 템포가 흥겹다? 웅장하다? 표현하기 힘들지만 그냥 멋있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대학생 형들은 저런 모습일까? 라며 막연한 동경의 시작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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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말하면 ‘그대에게’라는 음악을 좋아한다기 보다는 신해철이라는 뮤지션이 부른 다양한 노래가 내 인생의 중요한 시기마다 절묘하게 내 심장을 뛰게 해서 좋아했을지 모르겠다. 물론, 그 시작은 ‘그대에게’이다. ‘그대에게’는 고등학교 때 학예제에서 친구가 밴드를 결성해 1등을 먹기도 했던 곡이다. 물론, 노래는 내가 추천했다. 노래실력만 있었다면 내가 나가 보는 건데 말이다.

 

대학 시절에는 누구나 알다시피 ‘응원가’로 알려진 곡이다. 나는 잠깐 모 단체 치어단에 몸담기도(?) 했다. 이 노래 덕에 운동 아닌 운동을 열심히 했다. 치어 동작을 배우기 위해서다. 나의 열정이 고스란히 묻어있다고 해야 할까? ‘그대에게’ 율동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지만 사랑을 표현하는 노랫말처럼 소실적 나의 정체성에 불을 당긴 곡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 노래의 동작만큼은 몸에 힘이 들어가기에 충분했다.

 

‘숨가쁘게 살아가는 순간 속에도 우린 서로 이렇게 아쉬워 하는걸...’
‘아직 내게 남아 있는 많은 날들을 그대와 둘이서 나누고 싶어요...’

 

‘그대에게’ 와 함께 ‘우리 앞의 생이 끝나갈 때’ ‘슬픈 표정 하지 말아요’ ‘ 내 마음깊은곳에 너’ 는 나의 10대를 같이 했던 노래였다. 나는 지금도 그 당시의 신해철이 부르는 ‘그대에게’의 멋스러움이 그립고 당시의 뜨거운 가슴과, 사랑과 열정을 느끼고 싶을 때면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듣는다.

 

나는 지금 광고회사를 운영한다. 직업은 본인의 정체성을 일정부분 나타낸다고 생각한다. 적성과도 일부 상통한다. 아마도 음악이라는 문화생활이 나의 진로에 영향을 끼쳤다면 신해철의 ‘그대에게’가 출발이 아니었을까? 

 

아울러 난 지금 한 가정의 가장이다. 내 자식에게도 ‘아빠가 좋아했던 음악이야’라고 이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내 딸도 아빠의 어린 시절에 마음을 조금이라도 공감해주지 않을까? 그리고 내 딸 역시 본인이 좋아하는 노래가 인생에 큰 보탬과 함께 행복감을 느꼈으면 하고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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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해철이 등장한 바로 전인 1980년대는 제5공화국이 출범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군부 정치인들은 국민의 관심사를 돌리기 위해 스포츠, 섹스, 스크린으로 상징되는 ‘3S정책’을 펼쳤다. 이때부터 대학입학 정원이 대폭 늘고 사교육도 폐지됐다.

 

‘12시 통행금지’도 사라졌으며 경제가 성장하면서 수출이 늘고 중산층이 많이 생겨난다. 이때부터 컬러TV가 나오며 마이카 시대를 연다. 이쯤 6-70년대 베이비붐 시대 태어난 이들은 1980년대에 이르러 청년이 된다.

 

이들은 개인적이고 탈 정치적이며 경제적인 풍요 속에 자라면서 소비 지향적인 개성 중심의 세대로 성장한다. X세대로 표현되고 자유분방하며 파격적인 의상으로 비춰졌다. 이후 대중매체와 PC통신이 발달하며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등을 접하는 시대를 살아간다. 이런 사회적 조건 속에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신해철 역시 두발 교복 자율화, 사교육 폐지라는 사회, 정치적 배경 속에 중산층 가정에서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새로운 문화를 수용하는 세대들에게 대학가요제에서 들려준 ‘그대에게’를 비롯한 곡으로 그들을 대변하였으며, 시대의 아이콘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1988년에는 조용필이 이끌던 기존 트로트의 유행에서 벗어나 발라드, 록, 댄스, 포크 등 팝 요소가 들어간 대중가요들이 등장해 가요계를 풍성하게 했다. 제6공화국 문민정부가 수립되고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사회와 교육시스템을 비판한 뮤지션은 신해철 외에 서태지와 아이들, 015B 등과 함께 활동했다.

 

신해철은 그의 히트곡 ‘그대에게’를 넘어 X세대들의 청춘의 노래 ‘나에게 쓰는 편지’  ‘내 마음 깊은 곳의 너’ 와 그룹으로 활동하며 부른 ‘날아라 병아리’는 위로와 치유를 표현했다. 그는 비주류, 밴드를 고집하며 사회 비판 메시지를 남겼다.

 

한편, 1981년에서 1998년까지는 인터넷,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 당시 한국 대중음악 시장은 가요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말로 된 음악의 인기가 얼마나 되는지,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가 관심사였고 해당 방송사는 지역별, 연령별 무작위 추출한 전국 투표단의 존재가 있던 시대였다.

 

음악은 시대를 닮는다. 어떤 시대에도 음악은 각자의 시대를 고스란히 담아낸다. 또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음악으로 적지 않는 위로와 격려를 받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마왕’이라는 별명으로 민감한 사회이슈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신해철! 그의 음악이 그리운 시대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곳에서 세상을 비판하고 부조리에 맞서며 때로는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음악’이라 말로 나 자신과 시대를 표현하는 도구임에는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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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롱] 나의 음악 프로젝트, 신해철의 그대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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