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사회에서 무속은 여전히 불편한 시선과 왜곡된 인식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누군가는 그 안에서 인간 본연의 고통과 치유, 공동체의 전통과 믿음을 발견한다.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회 김정희 이사장은 그런 사람 중 한명이다. 그는 무속이 단지 ‘점을 치고 굿을 하는 미신’이 아니라, 오랜 세월 한국인의 삶과 함께해온 ‘민속문화’이며, '마음의 의례'라고 강조한다.
무속인으로서 20년 이상 활동해온 김정희 이사장은 단순한 개인 수행자가 아니다. 전통 무속의 길을 걷는 강신무(降神巫)이자 치유자다. 그는 단순히 신을 모시는 무속인이 아닌, 우리 사회속에서 무속이 어떤 공익적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고민하며 실천해온 활동가다.
그는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회를 설립하여 전국의 무속인과 민속예술인들이 하나로 연대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있다. 특히, 각 지역에 뿌리내린 당제와 마을굿, 전통 굿판 등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하여 문화예술 행사로 승화시키는 인물(人物)이다.
치유의 공간, 약수암
경북 영양에서 태어나 안동에서 자란 그는 열네 살 무렵부터 ‘보이지 않는 존재’의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무속의 길은 선택이 아닌 고통 속에서 마주한 운명이었다. 가정 형편이 기울면서 그는 공장과 식당에서 일하고, 보험설계사까지 전전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결혼 후에는 어린 딸과 함께 삶을 꾸려가며 신병과 생활고를 동시에 겪었고, 결국 무속인의 길을 받아들였다.
김 이사장이 처음 세운 신당의 이름은 ‘약수암’. “물처럼 사람의 병을 치유하고 마음을 어루만지는 무당이 되고 싶었다”는 소망이 담긴 이름이다. 대구에서 시작해 서울 금호동으로 옮겨온 약수암은 사람들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기도하는 공간이 되었다. 성동구 지역에서는 ‘잘 나가는 무당’으로 알려지며 명성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김 이사장은 스스로 ‘돈 잘 버는 무당’의 길을 내려놓았다. “신이 준 능력은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지, 내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라는 신념 때문이다. 그는 무속의 본질이 상업화되는 현실 속에서 진심 어린 공감과 치유, 기도를 통해 무속의 순기능을 되살리는 데 집중하고 있다.
세계로 향한 전통 굿, 무속은 문화다
전환점은 해외에서 찾아왔다. 김 이사장은 지난 2014년 러시아에서 열린 ‘샤먼 페스티벌’에 참가하면서 세계 13인의 대표 샤먼 중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행사에는 100여 명의 현지 무속인과 70여 명의 취재진이 몰렸고, 방송으로 생중계될 만큼 대규모였다. 그는 한국 전통 굿을 선보이며 뜨거운 반응을 얻었고 이후 몽골, 독일, 벨기에, 미국 등지로부터 지속적인 초청을 받고 있다.
“알록달록한 한복에 신복(神服)을 입고 무대에 서면 모든 사람의 시선이 집중돼요. 장단과 징 소리에 그들도 반응하고 따라 하게 되죠.”
LA에서의 한 공연에서는 수십년간 한국을 떠나 살던 이민자들이 눈물을 흘리며 굿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말을 하지 않아도 통하는 감정이 있더라고요. 그때 깨달았어요. 무속은 단지 신앙이 아니라, 우리의 정서와 문화를 품은 예술이라는 걸.”
공익 무속을 향한 제도적 실험
하지만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곧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무속인 협회를 설립하고 전국의 무당들과 소통을 시도했지만, 많은 단체들이 상업적 이익에 집중하며 굿 유치 영업 창구로 전락해 있었다. 그는 “이런 현실에서 공익적 활동을 하는 건 참 외롭고 어려운 일”이라고 토로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 이사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2014년 200여명의 회원들과 함께 설립한 사단법인 한국전통문화예술진흥회는 무속의 공익성과 전통문화의 순기능을 회복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소백산 산신제, 풍기 인삼 풍년기원제, 금성대군 위령대제, 인사동 굿한마당 등 전국의 굿 문화를 문화행사로 승화시켜 널리 알리는데 앞장서기도 했다.
무속학교 설립과 ‘제대로 된 무당’
현재 김 이사장은 무속학교 설립을 준비 중이다. 그는 “신병을 겪었다고 해서 무조건 무당이 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라며, 체계적인 교육과 검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기본 소양 없이 무속인이 되는 사례가 많아지면서, 무속 전체의 신뢰도와 도덕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그는 “무속의 미래는 제도적 장치와 교육 없이는 없다”고 단언한다. 그의 꿈은 무속이 사람을 속이는 직업이 아니라, 사람을 돕는 존중받는 직업으로 자리 잡는 것이다.

삶은 ‘춤추듯이’ 살아가는 것
김정희 이사장은 굿, 음악, 의식 등을 한국 전통문화로 인식하고 세계에 알리는 일에 헌신하고 있다. 또 (사)참교육학교폭력예방운동본부 후원, 독거노인 식사 봉사, 명절 쌀·떡 기부 등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도 함께 이어오고 있다.
그의 삶은 『신의 뜻, 신의 길』이라는 그의 자서전 1권에 이어 현재 준비중인 2권으로도 기록되고 있다. 그 책 속에는 무속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자 하는 진심과, “올바른 마음으로 길을 가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김 이사장은 지난 8월 27일부터 31일까지 헝가리에서 개최한 세계 페스티벌에서 또 한 번 한국 무속의 진수를 세계 무대에 선보였다.

“주어진 오늘을 춤춰라, 아주 즐겁게!”
그의 인생 모토처럼, 김정희 이사장은 신과 인간 사이, 고통과 치유 사이, 현실과 신성의 경계에서 흔들리며 길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것은 신의 길이 아니라, 사람을 위한 무속의 길이다.
김정희 이사장의 활동은 단순한 종교나 신앙을 넘어, 한국 문화의 뿌리를 되살리는 문화운동에 가깝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정희 이사장은 최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5 대한민국 파워리더대상’ 시상식에서 전통문화예술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는 무속 문화에 대한 사회적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평가된다.
“신이 내게 준 능력은 사람을 돕기 위한 것이지, 내 욕심을 채우는 수단이 아니다”라는 말처럼, 김정희 이사장의 삶은 '신을 향한 겸손'과 '사람을 향한 따뜻함'이 공존한다. 그는 오늘도 무속의 본질을 회복하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