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1-11-24(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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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필리핀 이주 역사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에 징용된 경우와 정신대로 오게 된 경우 등 암흑시대의 희생자로 첫 발을 디딘 이후 한국의 6.25 전쟁 시 필리핀군이 우리나라를 도와 군대를 파병하게 되었고, 60~70년대에는 필리핀에서 우리나라에 경제 원조를 함으로써 두 나라의 관계가 더욱 가까워졌다.
 
한인회는 1969년도에 설립되었으며, 70년대 이후로는 한국 대기업이 지상사를 파견하기 시작했고, 선교사, 유학생들이 필리핀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였다. 필리핀 한인총연합회는 필리핀에 거주하는 모든 한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로서 한인들의 친목과 유대를 강화하고 그 복리를 증진하며, 아울러 필리핀 국민과의 조화로운 삶을 추구함으로써 한인들의 위상을 제고하고 조국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한국경남고성은 이원주 회장의 고향이다. 이순신 장군이 승전보를 올린 당항포가 지척이다. 면서기였던 아버지와 농사짓던 어머니 사이에서 5남2녀의 넷째로 태어났다. 키가 작고 왜소한 체격의 그는 속않이를 자주하여 위장에 뭐가 들었는지 직접 보고 싶어 의사가 되려고 했다.
 
고성종합고교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어 의대 진학은 포기를 하고, 부산에 있는 무역회사 조광무역에 취직을 했다. 1980년 조광무역 해외법인 직원선발에 지원 했던 것이 필리핀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었다. 30년이 지난 지금의 이 원주는 마닐라 인근에 있는 종업원 2천명을 거느린 ‘ 케이리 패션 ’의 대표이다. ‘ 코리아 ’의 ‘ 케이 ’와 ‘이원주’의 ‘리’를 합성해 회사명을 지었다.
 
여성의류를 만들어 바나나 리퍼블릭, 폴로 등 미국 브랜드에 전량 납품하는 이 회장은 성공한 한인 기업인이다. 그는 지난해 12만 필리핀 교민을 대표하는 한인 회장이 됐다. “ 그 사람이 감투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한인회 분열을 막기 위해 떠밀려 회장이 됐다.”고 한인 기업인 김영기 씨는 전했다.

처음 필리핀에 간다고 했을 때 당시만 해도 20대에 해외 가는 건 드문 일이었다. 아버지는 무한한 경험을 해보라고 했으나, 어머니가 “결혼이나 하라”고 반대했다. 젊은 나이에 외국에 도전한다는 게 그는 큰 꿈과 희망이었다. 지금 당사에 근속 20년 이상 현지인이 13명이다.
 
자금이 넉넉하지 않더라도 현지인을 내 사람으로 만들면 성공이 결코 어려운 게 아니다. 당시 필리핀 직원들의 영어소통 능력, 임금, 기술 등이 의류사업 하기에는 조건이 좋았다. 미국에 전량 납품하다 보니 2008년 미국 금융위기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4천만 달러 넘는 매출이 재작년 2800만 달러까지 떨어졌다. 작년에 조금 회복했고, 조금 있으면 4천만 달러 아니라, 5천만 달러도 할 수 있다고 본다.
 
1982년 조광무역 필리핀 근무 마치고 귀국해서 부산에서 아내를 만났다. 처음 만난 날 점퍼차림으로 가서 필리핀 이야기만 늘어놓았는데 이게 집사람 마음을 끌었나 보더라. 잔업이 많아 데이트 약속시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지만, 아내는 늦더라도 반드시 나올 것이라고 믿고 항상 그 자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1983년 결혼 직후 그는 혼자 다시 필리핀에 왔다. 조광무역을 퇴사하고 미국계 회사에서 3년간 일했고, 그 돈을 밑천 삼아 1987년 회사를 창업했다. 아내와 자녀들은 1985년 마닐라로 왔다.


해외에서 성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먼저 그 나라를 공부해야 한다. 그 나라 문화와 언어, 생활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한다. 외국 가서 한국 스타일, 한국 음식만 고집하려면 그냥 눌러 사는 게 나을 것이다.
 
최근 지식경제부장관상을 수상한 이원주(57) 케이 리 패션 대표는 자신의 회사를 필리핀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의류 생산업체를 키운 비결을 이 한마디로 요약했다. “ 신뢰를 최우선으로,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이 회장은 “ 사업을 하면서 거짓말하지 않고, 변명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며 “거짓말과 변명은 일시적으로 위기를 모면하게 할 수는 있어도 잘못은 또 다른 잘못을 낳기에 결국 발목을 잡는다”고 비즈니스 철학을 밝혔다.
 
그는 2003년부터 사단법인 JTS코리아(이사장 법륜스님) 필리핀지부 대표로서 10여 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민다나오 오지에 40여 개 학교 설립을 지원해 왔으며, 올해 1월부터는 필리핀 한인총연합회 회장을 맡아 필리핀 동포 10만 명을 대표하고 있다. 나이도 생일도 모르는 민다나오 원주민들. 물건 팔고도 셈을 못하니 장사꾼들에게 번번이 속아서 생활터전을 잃기도 다반사였다. 그래서 가톨릭, 이슬람, 원주민 지역을 돌아가며 학교를 지어주었다.

자그마한 체격의 이원주. 그로나 그로인해 수많은 민다나오 원주민들의 삶은 휠씬 성장했다. 이원주는 “내가 그들보다 조금나은 위치에 있으니 도울 뿐”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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